가톨릭 교회가 또다시 성직자 성범죄 논란에 휘말렸다. 최근 볼리비아에서 폭로된 성추문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가톨릭 교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뒤늦은 교황청의 대응, 그리고 분노한 사회의 반응은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 충격의 고백록…“85명에게 상처를 줬다”
사건의 중심에는 스페인 출신 예수회 소속 성직자 알폰소 페드라하스가 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볼리비아 내 기숙학교에서 아동 수십 명을 상대로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 생전에 남긴 일기에는 “나로 인해 고통받은 이가 너무 많다”는 고백이 적혀 있었으며, 피해자는 85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페드로 리마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제들은 낮에는 성인, 밤에는 악마였다”며 당시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했다. 그는 성범죄를 교회에 알렸으나 오히려 추방당하는 불이익을 겪었고, 이는 피해자들이 조직적으로 억압당해왔음을 보여준다.
■ 교황청의 대응, “너무 늦었다”는 지적
사건이 폭로되자 예수회는 내부 조사를 실시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 조사관을 파견했다. 교황청은 볼리비아 정부와의 협조를 약속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정작 많은 가해 성직자들이 이미 사망한 이후였다.
더 큰 문제는 교회 내 은폐 시도다. 페드라하스 신부는 생전에 동료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지만, “앞으로 이 이야기를 고해성사에서 하지 말라”는 조언만 돌아왔다. 이는 교회 내부에 여전히 ‘은폐 우선’의 문화가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 들끓는 사회 여론과 국제적 파장
볼리비아 국민들은 분노했다. 수도 라파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교회 책임을 묻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대통령까지 직접 교황에게 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번 사건은 국제 사회에도 충격을 안겼다. 유럽과 북미 주요 언론은 해당 사건을 집중 보도하며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고, 신자들 사이에서는 탈교 움직임까지 번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일부 신자들과 성직자들은 “이제라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개혁의 기회”라며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교회의 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성직자 권위 중심 구조가 부른 폐해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구조에 있다. 가톨릭 교회는 위계질서가 강하고 성직자의 권위가 절대시되는 문화 속에서 문제 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도 무시당하거나 징계를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보호받고 피해자는 고립된다.
또한, 교회는 외부 수사기관과의 공조보다는 내부 해결에 치중해왔으며, 처벌은 형식적이거나 단기 전임 등의 방식으로 무마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반복적인 성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볼리비아 성추문 사건은 교회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단순한 사과와 뒤늦은 대응만으로는 교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가장 필요한 것은 투명성과 책임이다. 성직자라도 법과 도덕 앞에 예외일 수 없으며, 성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피해자 보호 체계 구축, 외부 수사기관과의 협력, 그리고 과거 잘못에 대한 진상 공개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교회의 진정한 쇄신은, 권위를 내려놓고 정의를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이 그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